래부 아줌마의 아픔과 기쁨

기뻐할 수 없는 중의 기쁨이야 말로 사람을 치유하는 길일 것이다.
써머쯔끌로 라는 카렌마을에 사는 래부 아줌마가 그런 경우이다.

교회방문을 총회회계와 더불어 계속하는데, 오늘은 써머쯔끌로라는 산속의 마을이다.
아침에 성도 중에 어려운 분을 만나서 위로하는 목적으로 해서 한 집으로 안내 받았다.

허름한 집안에 들어가니, 한 아주머니가 누워있었다.
그냥 편하게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래부라는 아주머니는 현재 65세인데, 이렇게 누워있는지가 10년이 되었다.
19년전, 갑자기 다리의 발목부근에서 아프기 시작한 병은 손과 발 그리고 관절이 있는 부분에 문제를 일으켰다.
이후 증상이 심해지더니, 10년전부터는 출입을 못하고 누워계셔야만 되었다.
류머티즘인지 잘 모르지만, 손과 발은 기능이 상실된 지 오래되었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오그라져서 일부는 달랑거린다.
그냥 붙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정도이다.
허리와 대퇴부도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여서, 남편이 몸을 씻어 주어야 하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같이 간 분이 래부 아주머니를 소개할 때 기쁘신 분이라고 하였다.
실제 대화 중에 아픈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근심 섞인 소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간간히 웃으시면서, 우리의 방문을 기쁨으로 맞아 주셨다.
만남이 계속되는데, 그분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잠시 무언의 시간이 있을 만한데, 자연스러움이 흐른다.
기도하고 나서면서, 잔잔한 기쁨이 걱정이 묘하게 같이 느껴진다.
래부 아주머니에게 남들이 없는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몸을 보면, 살 소망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영원한 소망이 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소망 없는 육체를 넘어서고 있다.
위로를 하러 갔다가 위로를 받는다.

복음의 능력이란, 세상의 무력을 넘어선 신비가 있다.
그 신비를 다 누리지는 못한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을 만나면, 같이 회복을 경험한다.
래부 아주머니는 그런 증인 중 한 사람이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지만 그분을 소망의 기쁨을 통해서 치유를 경험하기 때문이다.